안녕하세요.
개강하고 학과 행사 참여하고 좀 바빠서 며칠 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01 서론
저는 요즘 노벨피아에서 연재되고 있는 한 패러디 웹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빛나는 너였기에>라는 작품인데요, 제가 포켓몬 패러디를 좋아해서 재밌는 글 없나 보다가 제목 보고 재밌어 보여서(전 4세대 말곤 잘 모르는 멍청이라서 빛나만 보면 눈이 돕니다) 읽는데 스토리도 재밌고 흡입력이 좋아서 계속 읽고 있습니다.
아무튼 뜬금 없이 왜 웹소설 얘기를 하고 있냐면, 글을 읽다가 특정 대목이 갑자기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51화 - 보울>편을 보시면, 평범한 인간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괴력의 소유자인 빛나가 딱밤으로 페퍼를 기절시키고, 맞아서 기절해도 좋다는 오르티가의 말에 딱밤 두 대로 기절시키는(처음 한 대로 기절하지 않아 한 대 더 때렸습니다) 내용이 나옵니다.
공강날 방구석에 박혀 있던 저는 침대에 누워서 열심히 글을 읽던 중, 불현듯 멍청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볼 때, 딱밤을 때리는 것은 옳은 행위인가?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볼까 합니다.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두 분과 함께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윤리와 사상 또는 생활과 윤리를 공부하셨던 문과 학생이셨다면 벤담과 밀은 참 익숙한 이름일 것이고, 양적 공리주의니 질적 공리주의니 하는 것도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생윤 선택자였고,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 중인 문돌이입니다)
제가 문돌이기는 해도 철학 전공자는 아니다 보니 고등학교 윤리 수준에서 글을 작성했다는 점과, 심화 내용이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또한 제가 윤리를 배운지 시간이 흘러 일부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 주시고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2 본론
공리주의는 쾌락과 행복을 주는 행위가 옳은 행위이고, 반대로 불행과 고통을 주는 행위를 옳지 않는 행위라고 설명하는 윤리 이론입니다.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격언으로 유명합니다. 공리주의는 행위의 동기보다는 결과의 이익과 행복을 강조하며, 개인의 행복보다 많은 사회의 행복을 산출할 것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행위의 동기를 소홀히 하고, 개인 또는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리주의를 크게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밀의 질적 공리주의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벤담은 쾌락이 선이고 고통이 악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쾌락을 계산할 수 있는 7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같고 쾌락의 양적인 차이만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 옳은 행위입니다. 즉 많은 사람이 많은 쾌락을 경험하면 옳은 행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입니다.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빛나가 오르티가에게 딱밤을 때려서 기절 시키는 행위는 옳은 행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오르티가는 빛나에게 맞아서 기절해도 좋다고 말했다.
- 빛나도 그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딱밤을 때렸다.
- 오르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생각하며 그를 귀엽게 여긴다.
오르티가가 맞아도 좋다 해서 빛나도 이를 인지하고 때렸고, 둘 다 결과에 만족했으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조건을 충족합니다.
따라서 딱밤을 때려서 기절시키는 행위는 옳은 행위입니다.
밀의 질적 공리주의
밀은 벤담과는 약간 다른 주장을 합니다. 밀은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하며 쾌락을 중시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벤담과는 큰 틀에서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밀은 쾌락에 질적 차이 없이 양적 차이만 있다는 벤담과 다르게, 쾌락의 양적인 평가는 불가능하고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쾌락을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으로 나누며, 양에 상관 없이 고급 쾌락이 저급 쾌락보다 더 우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의 격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즉 그의 입장에서는 질적으로 좋은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 옳은 행위입니다.
이러한 질적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빛나가 오르티가에게 딱밤을 때려서 기절시키는 행위는 옳지 못한 행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지식, 감정 등의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므로, 고급 쾌락이다.
- 하지만 딱밤은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으므로, 말초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 딱밤을 때려서 기절시키는 것은 행위는 저급 쾌락이다.
따라서 딱밤을 때려서 기절시키는 행위는 옳지 못한 행위입니다.
비판
하지만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의 위의 주장은 각각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 양적 공리주의 비판: 결과가 좋으면(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천했다면) 의도가 불순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여도 정당화할 수 있다.
- 질적 공리주의 비판: 밀은 두 가지 선택지 중 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 쪽이 질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했지만, 이러한 기준은 주관적이다.
우선 양적 공리주의의 주장은 딱밤을 때리는 것이 폭력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필요악이라고 해도,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또한 폭력을 통해 쾌락을 만드는 것은 그 의도가 불순하며 상식적으로도 납득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딱밤으로 기절까지 시켰습니다.
한편 질적 공리주의의 주장은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딱밤을 때리는 것에 대해 갑이라는 사람은 고급 쾌락이라고 할 수 있고, 반면 을이라는 사람은 저급 쾌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질적 공리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학생들에게 심슨 가족과 셰익스피어 중 어느 것이 우월한지 물었을 때 셰익스피어라고 답한 학생들이 많았지만, 자유 시간에 심슨 가족 시청과 셰익스피어 읽기 중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심슨 가족 시청을 택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일부 학생은 심슨 가족의 시사 풍자 요소가 셰익스피어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질적으로 우월한 쾌락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급 쾌락을 추구할 수 있고, 쾌락을 구분하는 잣대가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03 결론
사실 윤리 이론에서 어떤 이론이 옳고 그른지 딱 잘라 결론내릴 수는 없습니다. 어느 이론이든 의의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 이론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점에서 각 이론을 1:1로 대응하며 비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딱밤을 때리는 행위 그 자체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 이견의 여지 없이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다 다르므로 특정인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비난하지는 않도록 합시다.
#04 여담
2022년 5월 19일 뉴시스는 후임병에게 수십 회에 걸쳐 딱밤을 때리는 등의 가혹행위를 한 군 선임병이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6단독 송명철 판사는 위력행사가혹행위 혐의로 기소된 20대 A씨에게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송 판사는 "범행의 내용과 경위, 수단과 방법, 횟수 등에 비춰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피해자가 가혹행위로 심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과 수치심을 받았음을 호소하며 엄벌을 바라고 있다"면서 "다만,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점, 초범인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판시했다고 전했습니다.
위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볼 때, 통상적인 수준을 초과하는 힘으로 딱밤을 때려서 상대방을 기절시키고, 그 횟수가 많다면 벌금 600만원을 아득히 넘는 형벌을 선고받을 수 있음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다만, 딱밤을 맞은 당사자가 딱밤의 위력과 부작용(기절) 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본인의 동의 하에 맞아서 기절한 것이라면 참작받을 수 있음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 글쓴이는 법학 전공자나 변호사가 아닙니다. 보도된 사례를 토대로 한 단순 추정이므로 실제 판례에서는 추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주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공리주의 관점에서 딱밤을 때리는 것이 옳은지 알아보았습니다.
한 번쯤 이상한 주제로 진지하게 글을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글을 써보게 되었는데, 저는 나름 만족하면서 썼지만 읽으신 분들은 어떠셨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사실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여러분께 추천드리려고 이런 글을 썼다는 건 국가기밀입니다. 꼭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방구석 철학자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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